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문단 편집) == 전술 철학 == [[브라질]] 출신 감독답지 않게 수비형 축구를 한다. 일단 현대 축구의 경향인 선수들의 피지컬, 조직력 (특히 수비력)을 중시한다. 이는 개인기와 공격력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브라질 스타일과는 다른 것으로 현지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02년 당시에도 3백 + 윙백의 조합으로 수비축구를 했으나, 당시 브라질의 공격라인이 사기적이었기 때문에 만나는 팀마다 두들기며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브라질 국대의 공격을 담당한 선수가 세명 뿐이 지만 '''그 세명이 호나우두, 히바우두 그리고 호나우지뉴'''였고, 수비적이라 해도 '''윙백이 카를로스, 카푸였다''' 워낙 선수들 공격력이 사기적인 스쿼드인지라 수비중심의 전술이 밸런스를 맞춰 준 셈이다.] 유로 2008에서도 포르투갈의 4백에 미드필더인 [[주앙 무티뉴]]와 프티가 가담하여 매우 수비적으로 운용했다. [[광저우 헝다]]에서도 [[김영권]]을 중심으로하는 수비진에 [[황보원]]이나 [[정즈]], [[파울리뉴]]와 같은 미드필더들이 수비에 적극 가담하게 만들었다. 공격에 있어서는 헤더를 중시하며, 사이드 어택과 빠른 역습을 중시한다. 다만 공격엔 특별히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공격력이 좋은 포워드가 있으면 팀은 승승장구하지만, 이들이 막히면 답이 안나오는 실정. 이는 2002년과 2014년의 대조적인 결과로 설명이 된다. 거기다가 2002년에는 스콜라리의 스타일이 대부분의 유럽팀에 생소했지만, 포르투갈이나 첼시를 맡으면서 2014년에는 이미 유럽에 대부분 알려진지라, 독일과 네덜란드가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또한 선수 관리도 남미 감독답지 않게 카리스마형이며 이 때문에 선수단 입김이 센 [[첼시 FC|첼시]]시절에는 선수단과 마찰이 심했다. 브라질 국대 감독 시절에는 여친이나 배우자와의 동침도 금지할 정도로 정신 집중을 중시했으며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폭행을 비롯한 추문이 따르는 [[호비뉴]]을 총애했었다.] 그리하여 첼시 시절엔 대부분의 기존 주전선수들과 사이가 나빴다. 다만 훈련 강도는 비슷한 카리스마형 감독인 [[펠릭스 마가트]]나 [[박종환]]과는 달리 그다지 세지 않았으며 첼시 시절에는 당시 주장이던 [[존 테리]]도 훈련이 너무 적다며 스콜라리를 언론에다 디스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를 전적으로 따르는 선수가 많은 것을 보면 리더쉽이 있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데쿠]]는 스콜라리가 경질된 후, "스콜라리 때문에 첼시에 왔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스콜라리가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 국대로 발탁한 파울리뉴는 스콜라리의 구애를 받고 [[토트넘 홋스퍼 FC|토트넘]]에서 두말않고 유럽에서는 거의 한물 간 선수들만 가는 막장 리그로 폄하되는 중국으로 갈 정도였다. [[미네이랑의 비극]]을 겪은데다가 첼시에서 참담히 실패했기 때문에 EPL팬들이 많은 한국팬들에게 평가가 낮은 편이다. 이런 팬들은 스콜라리를 선수빨 감독이라고 폄하하는 경우도 있는데, 좋은 선수를 데리고도 성적을 못거두는 감독이 수두룩 하다는 것을 보면, 스콜라리를 폄하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스콜라리는 리그보다는 토너먼트같은 단판승부의 대가이다. 2002년 월드컵때 독일을 제외한 팀 최소실점 팀이며 21세기 들어서 지금도 재현하지 못한 7경기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우게 됐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우승)의 브라질과 유로 2004(준우승)의 포르투갈은 선수 네임밸류만으로 좋은 성적을 장담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둬 선수 네임밸류가 올라간 것으로 보는게 더 합당하다. 2002년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 예상되던 팀이었고, 2004년의 포르투갈은 이미 2년 전 월드컵에서 골든 제네레이션이 대부분 노쇠화되어 은퇴한 후 그 그늘에 가렸던 이후 세대가 주전이었고, 그나마 골든제네이션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2년 전 2002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광탈한데다가, 포르투갈의 차세대 골잡이로 기대되던 [[엘데르 포스티가]]는 EPL에 갔다가 [[토트넘 홋스퍼 FC|토트넘]]에서 죽쑨 다음에 이후 2류선수로 전락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호날두]]는 당시 19세의 풋내기여서 좋은 성적이 기대되는 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유로 2004에서 스콜라리호 포르투갈은 조별리그에서 강팀 스페인을 이겼고, 8강에서는 잉글랜드와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승리, 4강에서는 네덜란드를 이겼다. 다만 스콜라리는 그리스의 [[늪축구]]에는 의외로 약해서 조별예선과 결승에서 각각 두번 다 패했다.] 마찬가지로 광저우에서도 중국인 주전들이 모조리 노쇠화된데다가, [[맨시티]]식의 운영을 하는 광저우의 성공을 본 다른 중국 구단들도 황사머니를 시전하여 남미-유럽에서 수준급 선수를 데려오면서 상위권팀들의 전력이 평준화되었으나, 광저우는 스콜라리 지휘 아래에서 3연패를 했으니, 스콜라리가 선수빨 감독 혹은 운장이라는 주장은 좀 무리한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스콜라리가 중국리그라서 쉽게 3연패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스콜라리와 경쟁하던 감독들이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마누엘 펠레그리니]], [[스벤예란 에릭손]], [[거스 포옛]], [[펠릭스 마가트]], [[로저 슈미트]], [[최용수]] 등의 한국의 해축빠들에게도 잘 알려진 쟁쟁한 감독들이었다. 경쟁 감독 이름들만 보면, 스콜라리가 중국 리그에서 쉽게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상황은 절대 아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동시기 같이 활약하였던 [[비센테 델보스케]]도 [[2014 브라질 월드컵]] [[폰치노바 쇼크]], [[유로 2016]] 16강 탈락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스]] 1기 시절과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의 화려한 선수단의 네임밸류로 선수빨 감독 혹은 운장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델보스케 사임 이후 [[갈락티코스]] 1기와 스페인 대표팀의 성적이 델보스케 재임시기보다 상대적으로 부진하였고, 이는 델보스케의 감독 역량이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장 델보스케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레알에서는 챔스 2회 우승, 라리가 2회 우승를 안겨주었고,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사상 최초의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델보스케는 '''축구 감독으로서 유일하게 챔스, 월드컵, 유로, 리그를 모두 우승한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